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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  잊혀지고 사라져버린 우리들의 아름다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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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고 변하면서 우리 주위에서 사라진 직업들도 참 많습니다.
시대의 흐름으로 사라진 직업도 많지만 새로 생성되거나 부활된 직업들도 많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사라진 직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1. 물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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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장수하니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생각이 납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수록 되었던 '북청 물장수' 생각도 나는군요. 실제로 물장수는 1900년대 초반까지 존재했습니다.
물장수는 도시의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하천이나 샘에서 떨어진 곳이나 높은 지대에 사람이 살면서 주민이 식수에 불편을 겪자
사람을 사서 물을 공급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생겨난 직업으로 급수시설이 인구의 증가에 대응하지 못하였으므로 물장수는 시민생활에서 꼭 필요했습니다.
1908년 당시 서울에는 2000명의 물장수가 있었는데 서울 인구가 20여만명이던 점을 감안하면 인구 100명당 1명꼴로 존재한 셈입니다.
이렇게 물장수가 성업했던 이유는 당시 수질 악화로 음료로 부적합한 우물이 상당수였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하지만 전국 각지에 수도가 부설되면서 물을 마음껏 쓸 수 있게 되어 결국 물장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처음 생수를 판매하기 시작할때는 '물도 사 먹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생수 판매는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2. 인력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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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인 김첨지의 직업이기도 했던 인력거꾼은 1920년대 대표적인 서민의 일반적은 생계수단으로써
가난한 서민들이 밥벌이를 위해 주로 했던 직종입니다.
소설에서는 인력거꾼이라는 하층민의 하루 일과를 소재로 하여 궁핍한 삶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력거는 일본에서 들여온 것으로 1894년에 처음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인이 10대의 인력거를 수입해 들여와 처음으로 인력거 영업을 개시하였고 최초의 인력거꾼은 모두 일본인이었으나 점차 한국인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인력거가 처음 도입될 당시에는 고위관리들이 주로 많이 이용했는데 고위 관리의 신변보호를 위해 수행하는 보호순검은
인력거가 급히 달리면 같이 뛰어야 하는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는군요.
인력거꾼이라고 해서 인력거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인력거 주인인 차주가 따로 있어 이윤이 생기면 차주에게 많은 부분을
할당하였기에 인력거꾼은 늘 빈곤의 악순환이었습니다.
이러한 인력거꾼도 새로운 교통수단 즉 전차, 부영 버스나 택시가 출현하면서부터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3. 전차 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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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운전사는 대한제국 말 서울에 처음으로 전차가 등장하면서 생겨났습니다.
1966년 전차 운행이 중단될 때까지 전차 운전사는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가장 호황을 누렸던 1930년대에는 전차의 수가 250여대,
하루 이용 승객도 48만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전성기는 1950년대까지 이루어졌으며 50년 후반 이후 자동차와 버스의 급증으로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움직이던 전차는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장애물로 전락하고 결국 1968년도에 철거가 됩니다. 전차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전차 수리공, 조립공 등 관련 직업도
같이 없어졌습니다. 대신 1974년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관련 직업군이 그 자리를 메웠습니다.

 

4. 활자주조공, 문선공, 식자공 그리고 타이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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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 부문에서도 다양한 직업이 있었습니다.
활자를 주조하는 활자주조공, 인쇄용 원판을 만드는데 필요한 활자를 골라내는 문선공, 원고를 보면서 판을 짜는 식자공 등이 그들입니다.
기자들이 작성한 취재 원고를 보며 활자를 찾는 문선공은 한 때 신문사에서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마구 휘갈긴 악필도 알아보고, 원고에만 눈길을 둔 채 활자를 뽑아내는 손놀림이며 마감 시간을 맞추는 것도 이들의 손에 달려있었기
때문이었죠. 한때 사무실 한 켠에 자리하던 타이피스트(타자원) 역시 지금은 컴퓨터가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없어졌습니다.
타이피스트는 1960년대 당시 여성의 비율이 81.3% 였을 정도로 여성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신문사나 출판사가 CTS(컴퓨터 조판 시스템)를 도입하면서 실물 활자는 컴퓨터 화면상의 폰트로 바뀌고 활자 주조, 문선, 지형 제작,
타이피스트 등의 직업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5. 영화 간판 제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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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한 1970~80년대에 들어 영화 간판을 그리는 영화 제작원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간판 화가들의 임금은 한 편당 200~300만원 정도였으며 간판 하나를 작업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7~10일 정도였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영화 산업은 거대 자본 중심으로 대형화가 가속되었고 프린트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형태의 간판이
걸리게 됩니다. 멀티플레스의 등장과 인쇄기술의 발달로 플렉스 간판이 그림 간판을 대신하게 된거죠.
이로 인해 손으로 그린 그림 간판은 더 이상 환영 받지 못했고 그렇게 간판 화가들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거리를 오가면서 또 버스로 통학을 하면서 극장마다 걸려 있는 영화 간판들을 수없이 많이 보아왔는데 그 중엔 정말 실감나게
잘 그렸구나하는 간판도 있었지만 다소 실망스러운 간판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기억도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6. 버스 안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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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이!" 이 한 마디에 버스가 출발하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버스 안내양을 직접 보며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발디딜 틈조차 없던 만원버스에서는 안내양이 직접 버스 밖으로 나와 어떻게든 사람들을 버스안으로 밀어넣고 버스 문도
채 닫을 수 없는 지경에서도 안내양은 맨 마지막으로 버스에 발을 들여놓으며 버스를 쾅쾅 치며 "오라이!"를 외칩니다.
고등학교를 집에서 버스로 1시간 30여분의 거리를 1년여 동안 하루에 네번의 버스를 타며 통학을 하면서 버스 안내양을 참 많이도
보았습니다. 버스 안내양은 1931년 서울에 유람버스가 생기면서 등장했고 1961년 버스안내양 제도가 본격 도입되자 버스 회사들이
앞다투어 버스 안내양을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버스 안내양은 주로 일자리를 찾아 시골에서 상경한 아가씨들이 대부분이었고, 1970년대 초중반에는 9급 공무원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았다고 하니 그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준 1등 공신이 돼었습니다.
이렇게 성황을 누리던 버스 안내양도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이미지 개선을 위해 버스 개혁이 추진되면서 버스 안내양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7. 한국 수출을 이끈 미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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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는 한국의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수많은 직업이 생겨났습니다.
그 대표적인 직업이 미싱공과 방적공, 가발 제조원 등으로 1970년대 60여만명의 여성이 경공업 부문에 종사했고 대부분이
이들 직업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미싱 분야의 재단사와 미싱사, 시다(조수) 등은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도 수출 한국을 만들고 지금의 사회 주역을 길러낸
억척 여성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남성들에게 결혼 선호 직업이기도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에 미싱 기술만 가지고 있어도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발 산업 역시 크게 번창하면서 수많은 여성을 직업의 세계로 불러모았지만 지금은 중국 인도 등에 그 자리를 넘겨주게 돼었습니다.

 

청계천을 따라 성냥갑처럼 늘어선 시장의 봉제공장, 소복히 쌓인 먼지속에서 꽃다운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이 돌아갑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에서는 봄 날 따스한 봄바람에 아름다운 꽃들은 피어나고 나비가 날아들어도 고향에 두고 온 동생들을
생각하며 우리네 누나들의 미싱은 그렇게 돌아간다는 미싱공들의 삶의 애환을 잘 노래하고 있습니다.

 

8. 전화 교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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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 통신 분야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직업들이 많았는데 그 대표적인 직업이 바로 전화 교환원입니다.
과거에는 전화기 다이얼을 돌려 신호를 연결하면 교환원이 응답하고 고객의 요청에 따라 상대 가입자의 회선에 플러그를 연결시켜 주는
방식의 공전식 전화기였습니다. 전화 가입을 신청하면 한 달에서 길게는 몇달까지 기다려야 전화를 놓을 수 있었는데 통화를 하려는
사람은 많고 설비는 부족했기 때문에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전화가 보급되기 전에는 주변 사람이 위독하거나 사망했을 때 긴급 연락 수단으로 일반 우편을 통한 편지보다 더 빠르게 전달되었던
'전보'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전화기의 등장과 함께 전보도 사라졌습니다.
내가 초등학교때인 1970년대 무렵 우리집에 처음으로 전화를 놓았습니다.
다이얼식 전화기로 색상은 검은색과 흰색 두 종류뿐이었는데 우리집은 흰색 전화기를 놓았습니다.
전화를 걸고 싶은 마음은 너무너무 컸지만 당시에 친구집에 전화가 놓여 있는 집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전화벨이 울리면 신기해하며 온 식구가 전화기 앞에 모여 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 후 자동식 전화기와 전자식 전화기가 확산되면서 교환원의 필요성이 점차 감소되면서 교환원도 사라지게 됩니다.
몇달씩 걸리던 전화 가입도 아침에 신청하면 오후에 전화를 놓을 수 있을만큼 빨라졌죠.
기술의 발달로 교환원은 사라졌지만 이를 이용한 텔레마케터, 고객상담원 등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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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아이스케키를 팔던 빙수장수, 얼음을 팔던 얼음장수, 종이를 주워 파는 넝마주이, 성냥을 만들던 성냥제조원, 굴뚝을
청소하던 굴뚝소제부, 무성 영화 시절 영화를 해설해주던 변사, 동네를 다니며 이발을 해주던 거리의 이발사, 항법사, 손수레꾼, 마부,
뗏목 조립공 등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나라 직업의 변화를 살펴보면 1970년대에는 섬유, 가발 등 한국의 주력 수출제품과 밀접한 관련 직업이 인기였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 인프라를 이용한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해 젊은이들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으며 2000년대 후반에는
환경과 개성, 웰빙 트렌드를 반영한 직업군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직업에도 생성과 소멸이 있습니다.
시대적 상황과 과학기술의 발달, 경제성장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어떤 직업은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틈타 새롭게 생겨나고
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기도 합니다. 직업이 사라졌다고해서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닙니다.
완전히 멸종하는 직업은 극히 적습니다. 식모는 가사도우미로, 인력거꾼이 사라진 자리는 택시 기사가 대신하고 있고, 활동사진 변사는
사라졌지만 내레이션이나 성우의 직업이 변사를 대신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직업은 단순히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의 범주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의 가치를 높혀주는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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