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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  잊혀지고 사라져버린 우리들의 아름다운 추억

2016.09.12 15:27

내 어린날의 추석

조회 수 499 추천 수 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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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종일토록 내립니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추석도 다가오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칩니다.
나이가 들어 맞이하는 명절은 그리 달갑지 않지만 내 기억 속 어린 시절의 명절은 참 행복했습니다.
서랍속에 넣어둔 흑백 사진을 꺼내보며 그 많은 사진 속에서 추석날 찍은 사진을 찾아보았습니다.
여러 사진 중에서도 특히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추석 사진을 몇장 올려봅니다.

 

my_memory.gif

1970. 9. 15 추석

 

흑백사진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할아버지 산소가 있던 우리 복숭밭에서 추석 성묘 후 아버지께서 찍어주신 사진입니다.
세 딸 나란히 세워놓고 사진을 찍으셨군요.
동네 뒤에 있는 나즈막한 산 꼭대기에 우리 복숭아밭이 있었습니다.
흑백사진이라 흐릿하긴 하지만 세자매 뒤로 보이는 풍경이 바로 우리동네입니다.
산아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던 그곳은 지금 아파트며 건물이 빈틈없이 들어서 있습니다.


복숭아밭 입구에는 할아버지 묘가 있었고 그 둘레를 병풍처럼 소나무가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 소나무에 튼실한 밧줄로
아버지는 그네도 만들어 주셨지요.
한여름, 할머니와 엄마가 복숭아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고 계실때 언니들은 모두 학교 가고 같이 놀아줄 사람이 없어
나는 할아버지 묘 주변에 피어 있던 들꽃 꺾어 꽃반지도 만들고 소나무에 메어둔 그네도 타며 그렇게 혼자 놀았습니다.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복숭아밭에서 지냈던 터라 나는 그곳에 대한 향수와 기억이 많습니다.
사진 뒤에 아버지께서 찍은 날짜를 정확히 기재해 두셔서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사진 뒤에는 우리 자매의 나이까지 적어두셨더군요.
11살, 8살, 4살...

 

my_memory_1.gif

 

추석 성묘길에 잠시 쉬는 중에 찍은 사진 같습니다.
이 사진은 아버지께서 날짜를 기록하지 않으셔서 정확한 년도는 알 수 없지만 1971년이나 1972년 추석 성묘길 같습니다.
할아버지 묘는 복숭아밭에 있었고, 그 윗대 조상님들 묘는 걸어서 1시간 30여분 정도 되는 공원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추석날마다 우린 두 군데 성묘를 다녀옵니다.
당시에는 성묘길이 비포장 도로라 울퉁불퉁 돌멩이가 튀어나온 산길을 하염없이 걸어야했습니다.
가다가 다리 아프면 쉬었다 가고, 목마르면 배 하나 깎아서 먹고 가고...
새로 장만한 예쁜 옷이랑 반짝반짝 새 구두 신고 엄마 뒤를 따라 걸어갔던 그 산길이 참 좋았습니다.
오르막길이다보니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리가 아파 가다가 몇번을 쪼그리고 앉아 쉬는 어린 나를 엄마는 따뜻한 손으로 잡아주셨고,
나를 업고 가셨던 기억도 납니다. 어린 내게는 분명 힘든 성묘길이었지만 단 한번도 추석날 성묘를 거른적은 없습니다.
추석날의 성묘는 아버지, 엄마, 그리고 언니들과 다 함께 갈 수 있는 유일한 외출이었으니까요.

 

사진에서 가운데 앉은 볼이 통통한 꼬맹이가 바로 나인데 추석이라 큰 맘 먹고 엄마 따라가 퍼머도 했습니다.
나는 아직 저때 신은 양말과 구두가 생각납니다.
양말은 오로지 추석날을 위해 준비 되었던 레이스 카바 양말이었는데 발목 부분을 반으로 접으면 하얀 레이스가 참 예뻤던
양말이었습니다. 구두는 반짝반짝 광이 나는 구두였는데 색깔은 기억나지 않는군요.
추석날 신으려고 보고 또 보고, 하루에도 몇번씩 꺼내보며 아껴두었던 구두와 양말입니다.
그땐 다 들 추석을 위해 며칠전에 사 둔 추석빔을 입고 싶어도 애써 참았다가 추석 당일에 입었습니다.
그러니 어린 마음에 새옷이, 새 구두가, 새 양말이 얼마나 입고 싶고 신고 싶었겠어요?
하지만 매일매일 꺼내보는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사진 속 우리 엄마는 곱기도 하시지...

 

my_memory_2.jpg

 

1974년부터는 드디어 컬러 사진이 등장합니다.
코스모스꽃길 속에서 엄마 언니, 나 세명이 찍은 사진은 1974년 9월 30일 성묘길이고, 바로 아래 내 남동생이 등장하는 사진은
1980년 9월 23일 추석날 모습입니다.
그리고 원두막에 걸터앉은 흑백사진은 1973년 9월 11일 추석입니다.
나는 아직 그때 입은 옷도 기억합니다.
언니 옷은 가슴 부분에 열쇠 모양이 수 놓인 노란 셔츠였고, 나는 달 그림이 수놓인 분홍 셔츠였어요.
바지는 아랫단에 캥거루 수가 놓인 예쁜 바지였어요. 이 옷 역시 엄마가 추석빔으로 사주셨던 옷입니다.

원두막 아래 온통 흰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데 9월에 저리 흐드러지게 핀 걸로 보아 메밀꽃같습니다.
코스모스가 가득한 두 장의 사진은 성묘 가서 찍은 사진이고, 메밀꽃 가득한 원두막 사진은 추석 성묘 후 아버지께서 언니와 나를
데리고 동네를 다니며 찍어주신 사진 같습니다.


성묘 가는 길은 비포장 도로라 새로 산 구두는 뽀얀 먼지로 가득 뒤덮혀 버렸고, 새 스타킹은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는 바람에
구멍이 뻥 뚫려 버린 적도 있지만 가을 햇살 받으며 그곳에 오르면 온 천지 코스모스로 가득했던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도 좋았지만 우뚝 솟은 산 아래 온통 코스모스가 끝도없이 피어있던 그 모습이 너무도 좋았어요.
이 험준한 산에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코스모스를 한가득 심어둔 걸까요?
부모님을 따라 성묘를 다니기 시작하던 때부터 늘 변함없이 그곳에는 코스모스가 절정으로 피어 우리를 반겨주었고, 해마다
우리의 모습은 조금씩 변해갔지만 코스모스는 언제나 변함없이 사진속 배경이 되어주곤 했었습니다..

80년대 후반부터였나 봅니다.
지천으로 피어있던 코스모스는 해가 갈수록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더 이상 그 곳에는 가을이 되어도 코스모스는 피지 않았습니다.
코스모스 가득하던 그곳은 고운 꽃대신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my_memory_3.jpg

 

며칠전 대청소하다 우연히 찾은 책입니다.
2004년에 '쌍둥이를 얻고 처음 맞는 추석날의 기억' 이라는 제목으로 내가 쓴 글이 실렸던 월간지입니다.
쌍둥이를 첫 아이로 얻으면서 내가 너무 힘들어하자 우리 엄마는 큰 애를 1년 반이나 키워주셨습니다.
대가족이었던 시댁에는 며느리가 많아 추석날 일할 사람도 많았지만, 당시 심장병을 앓고 있던 큰 애를 키우고 계셨던
친정에서는 엄마 외에는 일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아픈 아이 업고 홀로 명절 음식을 준비하셔야만 했습니다. 그 당시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로 쓴 글입니다.
당시에 시댁에서 조금만 배려해 주었더라면 우리 엄마도 덜 힘드셨을테고 내마음도 그렇게 아프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my_memory_4.jpg

 

책속에서 짧은 메모도 발견했습니다.
월간지 기자님의 친필이군요.
모두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시 꺼내보니 추억이 새록새록 돋습니다.

 

my_memory_5.jpg

 

할아버지 산소가 있던 복숭아밭도 개발에 의해 인근 대학교 부지가 되었고, 또 일부는 시 소유로 편입되는 바람에 지금은
사라져버렸습니다. 할아버지 묘는 조상님이 쉬고 계시던 공원묘지로 이장을 했습니다.
그 복숭아밭에만 올라서면 발 아래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던 참 전망 좋은 곳이었는데 그곳에 집을 짓고 살았더라면
언덕 위 그림같은 집이 되었을텐데 아쉽군요.

지금의 성묘길은 수풀을 헤치고 애써 길을 만들며 다리가 아프게 산을 오를 일도 없고, 툭툭 불거져 나온 돌부리에 발이 채일 일도
없습니다. 그 험하던 산길이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차로 몇십분이면 쉽게 성묘를 다녀올 수 있습니다.

 

명절날 입었던 새옷의 기쁨을 지금의 아이들은 알 수 있을까요?
명절만큼은 배불리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그 즐거움을 지금의 아이들은 알 수 있을까요?
꼬불꼬불 고갯길을 돌아 산을 오르고 또 오르고 다리는 아팠지만 가족과 함께했던 성묘길의 그 행복을 요즘 아이들은 느끼지 못합니다.
지저귀는 산새소리, 도토리와 밤이 익어가는 소리 들으며 바람에 춤추는 은빛 억새의 몸짓에 행복해하며 그 산길을 오르면
분홍, 하양, 진분홍 코스모스가 반겨주던 그 성묘길...
이제는 빗바랜 사진 속에, 그리고 기억속에만 남아있는 나만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 이카루스 2016.09.12 19:22
    기억이 아련할 것 같아요..^^
    옛날 기억도 많이 나고 그때 같이 놀던 친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도 나고..ㅎㅎ
  • twinmom 2016.09.13 06:15
    어제는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추석도 가까워오고해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흑백사진 꺼내보며 잠시 추억에 젖어 보았어.
    요즘 계속 비내리는 날의 연속이라 맑은 하늘 보기가 힘들어.
    오늘은 날이 좀 개였으면 좋으련만...
    동생도 추석 연휴 잘 보내.
  • 바람처럼 2017.03.22 11:57
    봄.... 날씨가 넘 좋아요
    저는 지금 사무실 입니다
    잠시 운영자님의 아름다운 추억 언저리에 앉아
    쉬었다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twinmom 2017.03.26 11:28
    날씨가 풀리고 봄이 되자 저도 바깥일이 많아져서 바람님 글 이제서야 봅니다.
    잘 지내시죠?
    산수유도 피고 매화도 피고 목련도 피고 봄 바람은 살랑살랑, 새들은 소리 높혀 지저귀고...
    좋은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일교차가 심해 저도 며칠 감기로 고생중인데 바람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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