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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  잊혀지고 사라져버린 우리들의 아름다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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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정말 덥습니다.
여름이야 원래 더운 계절이지만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 덥고 더 길게만 느껴집니다.
지난 봄부터 예년 기온을 훨씬 웃돌기 시작하더니 초복 하루전인 7월 12일 경주 기온이 37.9도, 초복날에는 이윽고 39.7도로
전국 최고, 75년만에 7월 최고 기온을 기록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36~8도의 날씨는 계속 이어지고, 지난 금요일에는 또 다시 39도를 넘으니 벌써 여섯번째 전국 최고 기온을 기록했습니다.
올해 유난히 경주 지역이 이상 고온 현상을 보이는 것은 그동안 주로 동풍의 영향을 받았는데 고온다습한 남서풍이 불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해마다 초복이면 장마와 겹쳐 더운줄도 모르고 보냈는데 올 장마에는 동해안 지방에 비는 커녕 극심한 가뭄이 이어졌고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큰 호수도, 경주 시내를 가로지르는 형산강도, 보문 호수의 물조차 말라버렸으니
가뭄의 심각성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중부는 폭우에 잠기고 무너지고 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곳은 밭작물이 타들어 가고 논바닥이 갈라지는 가뭄이 이어지고 있으니...
계속 이어지는 폭염과 가뭄 속에서 전국에서 가장 더운 지방으로 '경프리카' 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렇게 더우니 문득 내 어린날의 그 여름이 생각 나더군요.

 

선풍기도 없고,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니 1970년대 초반의 이야기입니다.

 

summer_a.gif

 

아마도 그 여름도 무척이나 일찍 시작되었고 몹씨도 더웠나 봅니다.
1970년 6월인데 벌써 한여름 모습이군요.
엄마와 우리 세자매, 아버지는 앞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계셨겠지요?
더위를 식혀주는 것이라고는 차고 시원한 지하수, 그리고 부채바람이
전부였던 시절입니다.
어린 나는 아예 웃통을 훌러덩 벗고 있군요.
뭐 꼬맹이었으니 흉이 될 것도 없고 더운 날엔 다들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래도 덥다고 불평하거나 짜증내고 찌푸린 기억 없이 그렇게 그 여름을
잘 보냈던 것 같습니다.

 

 

 

부엌문 가까이에 항상 소쿠리 하나가 걸려있었어요.
대나무로 만든 둥근 소쿠리였는데 끈을 달아 걸어둘 수 있게 만들었고 그 속엔 삶은 보리가 하얀 광목 천으로 덮혀 있었습니다.

당시엔 쥐도 많았으니 쥐나 파리, 벌레가 들어갈까 매달아 두었고 천을 덮어두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보리와는 달리 통보리밖에 없던 시절이라 보리는 미리 삶아두어야만 밥을 지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미리 삶은 보리에 쌀을 섞어서 밥을 했습니다.
요즘은 보리밥을 웰빙 음식으로 먹는다지만 중년의 우리에게 보리밥은 맛이 아닌 추억으로 먹습니다.

summer1_1.gif

 

 

무더운 여름 냉장고가 없으니 음식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도 없고, 또 그때는 많이해서
오래도록 먹을 반찬도 없었습니다. 그때 그때 필요한 만큼만 해서 먹었죠.
그러니 삼시세끼 더운 불 앞에서 그 많은 식구들 음식 준비하셨던 우리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가스렌지가 없던 시절이라 연탄불과 곤로가 전부였는데도 늘 엄마가 해주시는 음식은 꿀맛이었고
여름에 배앓이 한번 하지않고 컸습니다.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시던 엄마는 여름이면 땀을 비오듯 흘리셨는데 땀범벅이된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립니다.

 

 

summer3_1.gif

 

냉장고가 없으니 얼음도 귀했습니다.
평소에는 얼음이 그다지 필요치않지만 한여름 수박 화채 해먹을때면 엄마는 늘 동네 얼음공장에서 얼음 한토막 사들고 오셨죠.
그 얼음을 조각조각내어 수박 화채에 넣으셨는데 아! 화채가 얼마나 시원하고 달콤하던지...
요즘 아이들, 얼음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얼음이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지금은 얼음 정수기까지 등장해 얼음은 흔하디흔하지만 언니의 수박 화채에
들어간 얼음 조각이 내 것보다 더 크다고 입을 쑥 내밀던 기억이 날만큼 이렇게 얼음 한조각이 귀했던 시절도 분명 있었습니다.

 

여름에 동네 구멍가게 앞에 놓인 하드통 주위에는 늘 아이들이 서성이고 있었어요.
요즘이야 업소용 냉장고, 냉동고도 잘 나오지만 당시 하드통은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해 차게 만들었습니다.
하드통 뚜껑을 열어 하드를 뒤적이다보면 맨 아래 고무주머니로 감싼 드라이아이스가 보인 적도 있습니다.
하드통 속의 그 차가움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 하드를 이것저것 뒤지며 시간을 끌다가는 주인 아저씨께 엄청 혼이 났습니다.
아저씨가 어찌나 무섭던지 하드통 뚜껑 열자마자 하드를 꺼내야지 잠시라도 지체하면 이내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미리 마음 속으로 사고 싶은 하드를 점 찍어두고 산 적도 있고, 어떤 날은 아저씨가 빤히 지켜보고 계셔서 하드통 뚜껑
열자마자 맨 위에 얹혀있던 하드를 정신없이 집어 들고 뚜껑을 닫았던 적도 있습니다.

 

방과 방 사이에 있었던 대청마루는 여름이면 우리가족이 가장 오랫동안 머무는 공간이 됩니다.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을 보면 담장을 가득 뒤덮은 여주도 노랗게 익어가고, 탐스럽게 피어 있던 다알리아, 꿀 빨아먹던 사루비아,
저녁이면 살포시 피어나던 향기 좋은 분꽃, 키 낮은 채송화, 색색깔 과꽃이 곱게 피어 있었습니다.
마루 뒷문을 열면 할머니께서 심어두셨던 손톱에 꽃물 들이던 봉숭아도 피어 있었죠.

 

summer5.jpg맞바람이 솔솔 통하던 마루에서 할머니 부채질에 스르르 잠이
들곤 했습니다.
여름방학때는 마루에 엎드려 숙제도 하고, 라디오로 양정모 선수의
레슬링 금메달 소식도 들었고, '마루치 아라치', 한여름 등골을
오삭하게 했던 '전설따라 삼천리'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온가족 둘러 앉아 시원한 수박 화채도 먹고, 솜씨 좋은 우리 엄마
칼국수 하시느라 반죽을 밀던 곳도 그곳입니다.
낮에는 이렇게 방보다는 마루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지독히도 더운 여름밤에는 마루에 모기장을 치고 자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집 뒤 전신주에 벼락이 치는 바람에 우리집
누렁이가 놀라 대청마루로 뛰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내 유년의 여름날은 우리집 대청마루에서의 기억이 참 많은데
막상 사진을 찾아보니 대청마루에서 찍은 사진은 없더군요.
옆의 사진은 우리집 대청마루 천정의 서까래 모습입니다.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형광등 둘레로 전선이 보이고, 그 전선을 감고 있는 사기로 만든 애자도 보이는군요.
이름도 독특한데 지금은 저 애자도 보기 힘든 골동품이 되었습니다.

 

summer7.gif1980년대 초반, 고등학교 1년을 왕복 3시간이나 되는 먼 거리를 통학
했는데 안내양은 있었지만 에어컨은 없었던 버스에서의 장거리 통학은
여름이면 늘 곤혹스러웠습니다.
버스가 달릴때는 그래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견딜 수
있었지만 잠시 버스가 정차하는 동안에는 버스 안은 그야말로 푹푹
찝니다. 만원버스라면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죠.
햇볕이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았을 경우에는 더 낭패를 봅니다.
무엇보다도 오랜 시간 자리에 앉아있다보니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내릴 일이 막막했습니다.
치마면 좀 덜했을텐데 당시 교복 자율화 시대라 사복을 입었고,
거의 바지를 입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의자와 맞닿아있던 허벅지 안쪽의 옷이 땀으로 다리에 딱
달라붙어 있어 일어서면 옷이 몸과 하나가 되어 있었죠.
그래서 내리기 전 몇 정거장부터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우니까 그럴수도 있겠지, 옷이 몸에 붙어 있으면
다리 몇번 움직여서 떼면 되지 싶지만 여고 1년생, 한창때라 그게 그렇게 창피하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곧장 달려와서는 냉동실에 몇초간 얼굴을 밀어넣어 열기를 식혔던 기억도 납니다.

 

summer8_1.gif

 

그 더운 여름에도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고, 집 가까운 강에서 다슬기도 잡으며 더운줄도 모르고 놀았습니다.
그래서 내 유년의 사진에는 강가에서 찍은 사진들이 유독 많습니다.
그래도 더우면 큰 고무통, 그땐 다라이라고 불렀습니다.
얼음처럼 차가운 지하수 받아서 목욕도 하고 등목도 하고...
여름이야 한철이라 너무 더워서 짜증나고 불편해서 힘들었던 기억은 없습니다.

 

summer9.jpg

 

 

사진 속 등목을 시원하게 하고 있는 아이는 지금 의경으로
열심히 군복무중인 우리 둘째 초등학교때 모습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마당에서 등목 시켜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다 커버렸군요.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시절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편리해진 세상에서 참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편했고 어려웠던 그때지만 꿈에서라도 한번 가보고 싶은
그리운 그 여름날...
선풍기도 없고 냉장고, 에어컨이 없어도 우린 그 무더운 여름을
그렇게 잘 보냈습니다.

  • 이브라힘 2017.07.30 22:56
    옛날 옛적 한 여름 이야기를 소개해주셨군요? ㅎㅎ
    삼일 아이스케키 통과 얼음을 톱으로 써는 장면....
    모두가 옛 추억거리들입니다.
    빙그레 회사는 원래가 '퍼모스트'라는 회사로 있었었지요?
    그러던 것이 1976년대에 국어순화 운동을 한 참 벌이던 때가 있었지요?
    그때 스포츠 용어 등을 비롯한 많은 명칭들이 우리식으로 바뀌어져서 불리어졌지요?
    예를 들면 축구에서 코너킥을 구석차기로 골키퍼를 문지기로... 등등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가
    스포츠 용어 같은 것은 그냥 이전 용어들이 좋은 것 같다고들 하여서
    다시 콜기퍼, 코너킥.....으로 불리워지게 되었고
    그때 퍼모스트는 국어순화 운동에 함께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빙그레로 바꾸게 된 것이지요....
    기억에 나는 것은 그때 당시에 퍼모스트는 아이스케키 생산에 있어서
    획기적인 것들을 여러개 만들어내었지요.
    당시에 한 개에 50원 하던 쵸코하드가 참 맛이 있었었는데요.
    그때 당시에 보통 아이스케키들은 한 개에 20원에서 30원 정도를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다가 100원 짜리 부라보콘 등이 나오게 된 걸로 기억을 하고 있네요.
  • twinmom 2017.07.31 10:02

    퍼모스트는 저도 기억 납니다.
    달고 시원한 아이스케키만으로도 아이들 입맛을 사로 잡았는데 거기다 초코하드가 등장했으니
    얼마나 맛있었을까요?
    요즘은 빙과류 종류가 너무 많아서 하드 사러 갔다가 한참을 서성거릴때가 많습니다.
    그 옛날 하드통 뚜껑 오래 열어둔다고 불호령하시던 구멍가게 아저씨도 여름이면 가끔씩 생각납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까마득한 옛이야기인줄로만 알지만 제 기억엔 그리 오래지않은 이야기입니다.

  • 러시아까마귀 2017.08.02 20:51
    죠이드 장난감 생각납니다 ㅎㅎㅎㅎ
  • twinmom 2017.08.03 12:04
    저는 여자라 주로 인형을 가지고 놀았는데 어릴땐 언니들의 작은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그것도 언니 없을때 만져야지 있을때 만졌다가는 큰일납니다.^^
    내 소유의 인형은 초등학교때 어린 아이 만한 큰 인형이 최초의 내 장난감이었는데 '진희' 라 이름 지어주었죠.
    양장점에서 짜투리 천을 얻어다가 주로 인형 옷 만드는 놀이를 하며 놀았는데
    너무 커서 옷 만들기도 힘들고 그래서 인형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죠.
    후에 뜨개질에 재미를 들여 내 인형 조끼도 만들어주고 모자도 만들었던 생각이 납니다.
    당시에는 주로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장난감들이 인기가 많았던 것 같아요.
  • 보우맨 2017.08.08 11:03

    여름날 밤, 동네 얼음 가게로 얼음을 사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수박 화채를 만드는데 어머니께서 필요하다고 해서 얼음 30원어치 사왔던 기억이 납니다. 75, 76년 쯤 되었던 것 같은데...돌아오던 그 당시 동네의 밤길은 어두웠고 길가의 작은 가게나 문구점 조명은 30촉짜리 백열등이었어요.
    새끼에 샀던 얼음이 무척이나 투명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한번 돌아가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 twinmom 2017.08.11 11:46

    안녕하세요?
    그땐 다들 그렇게들 살았지요.
    저는 얼음 심부름을 하지 않아 당시 얼음이 정확히 얼마인지 잘 몰랐는데
    새끼로 매어 들고올 정도의 얼음이 대략 30원 정도 했었군요.
    새끼줄에 매인 얼음, 30촉 짜리 백열등...
    잠시 옛생각에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힘들고 불편하고 어찌 살았을까 싶지만 보우맨님 말씀처럼 다시 돌아가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만큼
    모두의 마음 속에 참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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