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가 부쩍 추워졌어요.
어느새 12월도 중순.
한 해를 마무리 할 이 즈음이면 새해에 대한 희망과 새로운 설계를 다짐하며 새 달력을 많이 찾는데
며칠전 병원에서 준 모양없는 새 달력을 남편이 하나 가지고 왔더군요.
책상 위에 놓아둘 작고 예쁜 달력이 필요해서 여기저기 인터넷을 기웃거려 봅니다.
어릴땐 달력이 하도 흔해서 채 걸지도 못한 채 둘둘 말아 장농위에 얹어둔 달력도 허다했는데 연말이면 남편이
두어개 가지고 오긴 하지만 그 옛날 늘 풍족한 달력 속에서 고르고 또 골라 걸어 놓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공짜 달력도 많이 귀한 편입니다. 나에겐 달력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12월 들어서면서부터 아버지는 늘 여러개 둘둘 말린 달력 뭉치를 들고 오십니다.
거의 매일같이 들고 오시기에 연말이면 달력이 풍년입니다.
저녁이면 우리 식구들은 아버지가 가지고 오신 새 달력을 펼쳐보며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 제일 예쁜 달력 고르려고 언니들과 이마를 맞대곤 했지요.
미리 마음에 드는 달력을 골라 놓았는데 그 다음에 가지고 오신 달력이 더 마음에 들어
언니들과 싸움을 하기도 했습니다.^^
할머니 방엔 언제나 늘 한결같은 달력이 걸렸습니다.
양조 회사에서 나온 달력인데 당시 유명한 여자 배우들을 모델로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모습이었지요.
유지인, 원미경, 금보라씨등이 주로 모델이었고
뒷 배경은 계절과 어울리는 고궁의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두달에 한번씩 넘기는 달력이라 좀 지루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아버지 방엔 풍경화 달력이었어요.

눈 덮힌 알프스 산 아래 푸르른 초원 위에서 평화로이 풀을 뜯는 양떼,
풍차를 배경으로 색색이 눈이 부실만큼 고운 자태를 뽑내던 네델란드의 튜울립 정원,
아름드리 나무가 드리워진 푸르른 그 호숫가,
온통 흰 눈으로 뒤덮힌 은색의 그 평화로운 시골 마을...
대부분 이런 유럽풍의 목가적인 풍경이나 산수화 달력이었어요.
그리고 매일매일 한장씩 찢어 쓰던 일력도 늘 아버지 방에 걸어두셨죠.
날짜가 아주 큼지막하게 있던 그 일력은 토요일은 파랑색, 일요일은 빨강색 숫자로
인쇄되어 있었고 종이 제질은 아주 얇아서 아침마다 아버진 달력을 쓰윽 찢으셔서
그 길로 화장실로 가십니다.
종이가 얇고 부드러워서 화장지용으로 그만이었던 시절,
신문지를 사용했던 집도 많았던 때라 신문지에 비하면 그래도 조금은 더
고급이었다고 할 수 있었겠지요?
아버지 이외엔 아무도 찢을 수도, 찢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1년을
거의 아버지만 사용하셨지만 아주 가끔씩 아버지가 찢지 않으셨던 날은
마치 횡제를 한 듯한 기분으로 나도 한 번 쓰윽 찢어본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일력도 보기가 드문데, 하기야 그 옛날처럼 종이가 귀한 시절도 아니고 한장씩 찢어야 하니 자원의 낭비도 되겠군요.
그리고 언니들이 사용했던 방엔 언니들이 고른 달력, 그럼 내 방엔? 내 방은 따로 없었어요.
아버지와 엄마랑 함께 사용했는데 내 자그마한 책상 위에 내가 직접 고른 달력을 못을 박아 걸어두곤 했지요.
크기가 작고 귀여운 아기자기한 그림이나 아이들을 모델로 한 달력, 멋진 풍경화가 그려진 수채화풍 달력들을 참 좋아했어요.
자그마한 달력들은 의례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크기가 작은 달력이면 무조건 다 좋아보였습니다.

그렇게 고르고도 남은 달력이 어찌나 많은지 빛을 보지 못한 그 새 달력들은 새 학기 시작되면 새책 표지를 입히고,
동생 딱지를 만들고, 제사나 명절때 부침개 만들면 기름 받이용으로 소쿠리 아래 깔리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달력을 돈 주고 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기업들이나 단체들이 홍보용으로 많이 만들어 배포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달력이 귀했던 시절엔 한 장에 열두 달이 다 들어 있고
자신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들어간 국회 의원 달력이 전부였는데
실제로 내가 달력의 풍년 속에 살았던 80년대엔
경제 성장이 이뤄지며 달력도 다양해지고 호화로워져
회사는 물론 개인사업자들도 다투어 선전용으로
달력을 찍어 나눠 주는 바람에 달력의 풍년 시대였다고 합니다.
인기 탈렌트들이 고운 한복을 입고 고궁을 배경으로 찍은 달력,
그리고 맥주 회사에서 나오는 비키니 차림의 미녀 배우들의 달력은
어르신들은 질색을 하셨지만 젊은층에선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달력은 지금도 인기가 있지요?
세월따라 달력도 많이 변했습니다.
요즘은 맞춤형 달력도 나오고 가족들 얼굴이나 아이들 모습을 담아 자신이 직접 달력을 만들기도 합니다.
나 역시나 몇해전엔 직접 달력도 한 번 만들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이렇게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늘 새 달력을 보면서 새 해엔 더 좋은 일, 더 나은 일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 같습니다.
새해엔 모두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라며...
지금도 달력이 있지만 그시절 제가 이십대 중반 이었나?
길을 지나면 달력가게가 있을정도 였죠
지나간추억을 간직한 달력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