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겨울밤의 주전부리

조회 수 633 추천 수 0 2012.01.06 10:20:36
[레벨:30]id: id: twinmom

snack_1.gif

 

겨울이라 밤이 참 깁니다.
저녁을 배불리 먹었음에도 10시 이후가 되면 배가 출출해지기 마련인데 이 무렵이면 야식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치킨, 라면, 김밥, 피자, 순대, 족발등 요즘 야식들은 종류도 다양하고 사다 먹기도 편합니다.
하지만 우리 어릴때야 어디 그랬나요? 문득 내 유년 시절 긴긴 겨울밤을 함께했던 주전부리들이 생각났습니다.

 

창호지 바른 문틈 사이로 겨울 칼바람이 매섭게 비집고 들어옵니다.
메주를 달아놓은 할머니방에서는 벌써 콤콤하니 메주 익어가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합니다.
겨울이라 해는 일찍 떨어지고 그만큼 저녁 먹는 시간도 더 빨라집니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나서 어른들은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십니다. 웃풍이 센 집이라 손과 코끝이 벌써 시려옵니다.

 

snack2.jpg

 

따뜻한 아랫목은 할머니, 아버지가 앉아 계시고 9시 뉴스가 끝나는 시간까지 그 자리는 항상 두 분의 지정석이 됩니다.
9시 뉴스가 끝나고 아버지는 건넌방으로 주무시러 가시고 나면 서로 따뜻한 아랫목 차지하려고 언니와 옥신각신 합니다.
그 무렵이면 배가 출출해지기 시작하고 한창 먹성 좋을 나이라 저녁 먹은 건 온데간데 없고 언니도 나도 입맛만 다십니다.
할머니께서도 입이 심심하신 모양입니다.
대청 마루 구석에 놓아둔 포대 자루를 열어 무우 하나 꺼내 오십니다.
이가 좋지 않으셔서 쓱쓱 숟가락으로 긁어 드시는데 한 입 받아 먹어보면 참 시원하니 달고 맛이 있습니다.
할머니 드시려고 가지고 온 무우를 언니와 내가 나란히 받아 먹는 바람에 할머니는 잡숫지도 못하고 무우만 숟가락으로

연신 긁고 계십니다. 보다 못한 엄마가 밖으로 슬그머니 나가셔서 반찬 하려고 매달아 놓은 꾸덕꾸덕 말라가는 명태를

몇 개 빼내 연탄불 위에 올려 놓습니다.

하~ 그 냄새가 기가 막힙니다. 더러 까맣게 탄 부분도 있지만 탄 건 그리 대수가 아닙니다.

이 명태 연탄 구이는 얼마나 맛이 있던지 아버지도 무척 좋아하셨죠.

 

snack3.jpg하지만 제일 먹고 싶고 제일 좋아했던 겨울밤 주전부리는 따로 있었습니다.
밖은 하얀 눈이 소리없이 쌓이고 어깨며 머리위에 온통 눈을 소복히 이고

들어오신 아버지. 한 잔 기분 좋게 드신 아버지께서 기름이 밖으로 스며나온

누런 종이 봉투를 엄마에게 건네십니다. 안을 보지 않아도 풍기는 냄새만으로도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언니와 나는 벌써 알고 있습니다.
바로 통닭입니다.
요즘은 치킨도 종류가 다양해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지만 당시엔 닭 한 마리를

통째로 튀긴 통닭뿐이었습니다. 어찌나 맛있던지 정신없이 먹어대지만

닭을 먹지 못하는 우리 큰언니는 멀찌감치 떨어져 관심도 없습니다.

그럴때면 엄마는 큰언니만을 위해 꼭 계란을 삶아 주셨지요.
평소엔 과묵하고 엄하셔서 무섭게만 느껴지던 아버지였지만 술만 드시면 항상 기분이 좋으셨고 말씀도 많이 하셨던 
마음은 참 따뜻하셨던 분입니다. 술을 드신 퇴근 길에는 어김없이 우리들 간식을 들고 오셨는데 어떤날은 따끈한 군고구마

또 어떤날은 김이 폴폴 나는 찐빵, 한 입 먹으면 입술마져 하얗게 되었던 쫄깃한 찹쌀모찌도 사들고 오셨지요.
하지만 술 드시고 오시는 날이 많지 않으셔서 이런 주전부리들에 대한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던 날도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가끔씩 느껴보는 행복이기에 더 기다려지고 그래서 맛이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snack4.jpg

 

뭐니뭐니해도 겨울밤 주전부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찹쌀떡과 메밀묵입니다.
"찹사알 떠억~, 메미일 무욱~" 을 외치며 그 춥던 한겨울밤에 온 동네를 돌아다니던 찹쌀떡 장수의 목소리도 요즘은

들리지 않습니다. 사실 어릴때부터 겨울밤마다 들어온 정겨운 소리건만 정작 한 번도 사 먹어 본 적은 없습니다.
찹쌀떡 메밀묵과 더불어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겨울 간식으로는 군고구마를 빼 놓을 수 없지요.
껍질을 벗기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란 속살 한 입 베어 물면 그 달콤함에 온 몸이 녹아드는 것 같습니다.
체할라 걱정하시며 내 놓으시던 동치미 국물은 이가 시릴 정도여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당시엔 대부분 연탄을 겨울 연료로 사용할 때라 연탄 가스 중독도 상당히 많았는데 연탄 가스에 중독이 되었다 하면
제일 먼저 이 동치미 국물을 마시게 했는데 정신을 빨리 차리라고 그랬던가 봅니다.

 

군것질 거리가 귀했던 30, 40년 전만 해도 연탄불 위에 구운 고구마와 밤, 쫄깃한 가래떡과 조청만 있어도

긴긴 겨울밤은 행복했습니다.
소복히 눈 내리던 밤, 창호지 바른 문틈 사이로 칼바람이 소리도 없이 비집고 들어오고

메주 익어가는 쾌쾌한 냄새가 나는 방 안에서 머리만 내놓은 채 어깨까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먹던

겨울밤 주전부리들이 먹거리로 넘쳐나는 요즘도 그리운 건 왜일까요?


[레벨:20]id: id: 이브라힘

2012.01.06 18:56:01

우와!!

저 군밤, 찐빵, 군고구마, 따끈한 가래떡...

게다가 보기만 해도 시원한 동치미 김치...

저녁 식사를 했는데도

뭐라도 더 먹지 않으면 도저히 못견디겠네요 ㅎㅎㅎ

당장에 우리 동네 사거리 찐빵집에 가서

찐빵, 만두라도 사다가 먹지 않으면 못견디겠습니다.

트윈맘님이 오늘 완전히 살찌게 만드는군요....^^

 

[레벨:30]id: id: twinmom

2012.01.07 15:14:56

^^ 어제 찐빵 사 드셨어요?

저녁먹고 나서 출출한 시간에 맛난 것 보면 더 먹고 싶어지죠.

사진 속 찐빵은 우리 동네 수요일이면 오시는 찐빵 아저씨의 찐빵이랍니다.

인심도 후하셔서 덤으로 한개씩 꼭 더 넣어 주세요.

가을과 겨울에는 찐빵, 봄과 여름엔 꽈배기와 도너츠가 아저씨 주 메뉴입니다.

직접 그 자리에서 만들어서 파는데 찐빵도 그렇고 꽈배기며 도너츠도

옛날 어릴때 먹던 맛 그대로예요.

[레벨:20]id: id: 이브라힘

2012.01.07 19:41:26

오늘 주말 저녁에는 꽈배기에 도너츠 이야기까지 나와서

정말로 더이상은 못참게 하시는구먼요. ㅎㅎㅎ

오늘 밤은 좀 더 두고봐야겠지만

어제 밤에는 그냥 악물고 참았답니다. ㅋㅋㅋ

헌데 저 맨 위의 집사진은 오래된 사진 같은데

장소가 어딘지 궁금하네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저런 빽빽하게 집이 들어선 곳에 살 적에

이맘 때 쯤 해서 어두운 골목길을 드나들던

찹쌀떡과 메밀 묵 장수,

그리고 새벽녁의 두부장수 소리들

이제는 정말 그옛날의 향수가 되어버렸지요?

우리는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찐빵, 도너츠, 만두, 붕어빵, 호두과자 나눠먹는 즐거움

말도 못하답니다...

보통 밖에 나가서 식구들 붕어빵 한 번 사다주려면

한 30-40분 가량 지키고 서있어야 한답니다...^^

[레벨:30]id: id: twinmom

2012.01.07 21:09:19

이른 아침 두부장수의 종소리는 저도 기억납니다.
어떤날은 엄마가 아침을 준비하시다 그 두부장수의 종소리가 들리기만을

애타게 기다리신 적도 있었어요
두부장수의 딸랑이던 종소리도 우리 곁에서 사라진 그리운 소리가 되었군요.


저 위의 정겨운 동네 이미지는 순천에 있는 드라마 세트장입니다.
70년대 동네, 골목길, 구멍가게, 문구점등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 곳입니다.

좀 더 오래된 느낌이 들게 흑백 처리하고 분위기에 맞게 눈 내리는 풍경으로 만들어 보았어요.

함께하는 식구들이 많으셔서 간식거리를 사도 푸짐하게 사셔야 겠어요.
붕어빵은 그때그때 구워서 파니 한참을 기다리셨다 사시는군요.^^

[레벨:20]id: id: 이브라힘

2012.01.09 10:51:14

아하 순천이로구먼요.

그 순천에 있다는 세트장...

이제 보니 가본 곳입니다.

우리 식구들 데리고

순천 저 세트장과 정읍쪽으로 가까운

낙안읍성이라고 하나요??

그 일대를 여수 일대까지 해서

쭈욱 한 번 돌아서 온 적이 있습니다.

뭐 여기서는 가까운 곳이니까요....

경주만 가보지를 못했군요 ㅎㅎㅎㅎ

[레벨:30]id: id: twinmom

2012.01.09 11:38:08

전라도라 잘 아실줄 알았습니다.^^

오오... 벌써 다녀오셨어요?

계신 곳과도 그리 멀지 않군요.

전라도쪽으로도 좋은 곳이 많은데 저는 아직 전라도는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레벨:20]id: id: 이브라힘

2012.01.09 23:43:34

본인도 원래 고향은 서울이랍니다.

이곳에서 살게 된지는 한 12년 되었습니다.

전라도 쪽에서 가본 곳 중에서

인상 깊었던 곳 몇 군데는

정읍의 내장산, 고창 쪽의 선운사

이곳 김제, 부안 쪽으로는 새만금, 채석강

(코스모스님이 이곳서 찍은 사진을

올려놓은 것이 있지요? ㅎㅎ), 그리고 금산사

순창의 강천사(소문 들으셨는지 모르겠는데

여기 여름에 가면 정말 더운 줄 모릅니다.

폭포의 경관과 경치도 그만...)

진안의 마이산, 무주의 구천동 계곡

경상도와 경계지대인 지리산

순천, 여수 돌산대교, 목포 유달산 등이고

경상도 쪽으로는 통영, 거제도와 외도를 다녀왔고

경주는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별로 하지 못하는 편인데

많은 사람들을 돌보다 보니

이들과의 프로그램으로 다니게 되는 겁니다.

여행 바우처 지원사업으로 제주도를 두번 다녀왔고

뭐 그정도입니다....

 

 

[레벨:30]id: id: twinmom

2012.01.10 12:17:44

이브라힘님 고향은 서울이셨군요.

전라도에 계셔서 전라도분인가 했어요.

우와... 전라도 좋은 곳 엄청 많네요?

말씀 들이니 더 가보고 싶어집니다.

늘 많은 분들과 함께 하시기에 정작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어 여행하기는 힘드시겠어요.

[레벨:6]id: id: 천둥이

2012.01.10 18:30:40

이미지 속의 풍경 완전 저의 로망입니다. 언젠가는 꼭 이런 곳에서 작업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레벨:30]id: id: twinmom

2012.01.11 12:12:16

우리네 생활은 눈부시게 변하고 발전해 가고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저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빽빽히 모여있는 동네들도 그립고

무섭던 동네 구멍 가게 주인 아저씨의 호통 소리도 오늘은 그립기만 합니다.

몸은 편리한 생활을 쫓으면서도 마음은 더디고 불편하고 힘들던 그 시절에 머물고 싶군요.

 

List of Articles
제목 날짜 조회 수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 나누는 곳입니다 2003-04-30 8734

모두를 멈추게 했던 1분 19초 file

  • 2012-05-18
  • 조회 수 52

오후 5시, 혹은 6시만 되면 모든 사람들을 부동자세로 만들었던 국기 하강식. 애국가의 웅장한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길을 가던 사람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사람도, 서로 싸우던 사람도, 딱지치기하던 꼬마도 모두를 그 자리에 우뚝...

추억의 참고서 file [8]

  • 2012-03-30
  • 조회 수 338

지난 토요일 아이와 함께 서점에 들러 새학기 참고서를 샀습니다. 새학기 시작된지 한 달이 거의 다 되어 가는데 참고서 구입이 다소 늦은 감도 없지 않지만 작년에 참고서를 일찍 구입했다가 학교에서 과목별로 지정해 주는 참고서가 ...

긴긴 겨울밤의 주전부리 file [10]

  • 2012-01-06
  • 조회 수 633

겨울이라 밤이 참 깁니다. 저녁을 배불리 먹었음에도 10시 이후가 되면 배가 출출해지기 마련인데 이 무렵이면 야식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치킨, 라면, 김밥, 피자, 순대, 족발등 요즘 야식들은 종류도 다양하고 사다 먹기도 편합니다...

아버지를 사로 잡았던 MBC 권투 file [8]

  • 2011-11-04
  • 조회 수 1370

"엄마를 사로 잡았던 WWF 프로레슬링" 이란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오늘은 아버지를 사로 잡았던 MBC 권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드라마나 코미디에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던 우리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셨던 방송 프로...

추억의 AFKN file [2]

  • 2011-10-14
  • 조회 수 1299

요즘이야 지상파 방송을 비롯해 케이블 방송, 위성 방송까지 텔레비전만 켜면 채널이 어찌나 많은지 어느것을 봐야할지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남편의 경우엔 한 프로그램을 계속 보지 못하고 끊임없이 채널을 바꾸는 습관이 있어 간...

월간팝송과 음악세계 file

  • 2011-09-16
  • 조회 수 1712

FM 라디오와 팝송, 마이마이 이야기를 했더니 1980년대를 이끈 음악 잡지 생각이 났습니다. 1980년대 음악 잡지하면 월간팝송과 음악세계지요. 지금까지도 많은 분들이 음악세계 보다 월간팝송을 더 오래도록 기억하시고 80년대 음악 잡...

워크맨과 마이마이 file [2]

  • 2011-07-08
  • 조회 수 1763

요즘이야 음악 듣기도 편리하고 다양해진 세상이라 컴퓨터를 켜도, 텔레비젼을 봐도 음악은 편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또 휴대폰이나 mp3, psp등 간편하게 휴대하고 다니면서도 음악은 얼마든지 들을 수가 있지만 80년대 무렵엔 휴대하...

추억의 FM (2) file [2]

  • 2011-06-17
  • 조회 수 3571

지난 시간에 이어 추억의 FM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 (MBC 표준 FM - PM 10:00 ~ 12:00) "별이 빛나는 밤에" 줄여서 "별밤" 이라고도 하는데 MBC FM 라디오의 장수 프로그램입니다. 1969년 3월 17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