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이라 밤이 참 깁니다.
저녁을 배불리 먹었음에도 10시 이후가 되면 배가 출출해지기 마련인데 이 무렵이면 야식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치킨, 라면, 김밥, 피자, 순대, 족발등 요즘 야식들은 종류도 다양하고 사다 먹기도 편합니다.
하지만 우리 어릴때야 어디 그랬나요? 문득 내 유년 시절 긴긴 겨울밤을 함께했던 주전부리들이 생각났습니다.
창호지 바른 문틈 사이로 겨울 칼바람이 매섭게 비집고 들어옵니다.
메주를 달아놓은 할머니방에서는 벌써 콤콤하니 메주 익어가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합니다.
겨울이라 해는 일찍 떨어지고 그만큼 저녁 먹는 시간도 더 빨라집니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나서 어른들은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십니다. 웃풍이 센 집이라 손과 코끝이 벌써 시려옵니다.

따뜻한 아랫목은 할머니, 아버지가 앉아 계시고 9시 뉴스가 끝나는 시간까지 그 자리는 항상 두 분의 지정석이 됩니다.
9시 뉴스가 끝나고 아버지는 건넌방으로 주무시러 가시고 나면 서로 따뜻한 아랫목 차지하려고 언니와 옥신각신 합니다.
그 무렵이면 배가 출출해지기 시작하고 한창 먹성 좋을 나이라 저녁 먹은 건 온데간데 없고 언니도 나도 입맛만 다십니다.
할머니께서도 입이 심심하신 모양입니다.
대청 마루 구석에 놓아둔 포대 자루를 열어 무우 하나 꺼내 오십니다.
이가 좋지 않으셔서 쓱쓱 숟가락으로 긁어 드시는데 한 입 받아 먹어보면 참 시원하니 달고 맛이 있습니다.
할머니 드시려고 가지고 온 무우를 언니와 내가 나란히 받아 먹는 바람에 할머니는 잡숫지도 못하고 무우만 숟가락으로
연신 긁고 계십니다. 보다 못한 엄마가 밖으로 슬그머니 나가셔서 반찬 하려고 매달아 놓은 꾸덕꾸덕 말라가는 명태를
몇 개 빼내 연탄불 위에 올려 놓습니다.
하~ 그 냄새가 기가 막힙니다. 더러 까맣게 탄 부분도 있지만 탄 건 그리 대수가 아닙니다.
이 명태 연탄 구이는 얼마나 맛이 있던지 아버지도 무척 좋아하셨죠.
하지만 제일 먹고 싶고 제일 좋아했던 겨울밤 주전부리는 따로 있었습니다.
밖은 하얀 눈이 소리없이 쌓이고 어깨며 머리위에 온통 눈을 소복히 이고
들어오신 아버지. 한 잔 기분 좋게 드신 아버지께서 기름이 밖으로 스며나온
누런 종이 봉투를 엄마에게 건네십니다. 안을 보지 않아도 풍기는 냄새만으로도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언니와 나는 벌써 알고 있습니다.
바로 통닭입니다.
요즘은 치킨도 종류가 다양해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지만 당시엔 닭 한 마리를
통째로 튀긴 통닭뿐이었습니다. 어찌나 맛있던지 정신없이 먹어대지만
닭을 먹지 못하는 우리 큰언니는 멀찌감치 떨어져 관심도 없습니다.
그럴때면 엄마는 큰언니만을 위해 꼭 계란을 삶아 주셨지요.
평소엔 과묵하고 엄하셔서 무섭게만 느껴지던 아버지였지만 술만 드시면 항상 기분이 좋으셨고 말씀도 많이 하셨던
마음은 참 따뜻하셨던 분입니다. 술을 드신 퇴근 길에는 어김없이 우리들 간식을 들고 오셨는데 어떤날은 따끈한 군고구마
또 어떤날은 김이 폴폴 나는 찐빵, 한 입 먹으면 입술마져 하얗게 되었던 쫄깃한 찹쌀모찌도 사들고 오셨지요.
하지만 술 드시고 오시는 날이 많지 않으셔서 이런 주전부리들에 대한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던 날도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가끔씩 느껴보는 행복이기에 더 기다려지고 그래서 맛이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겨울밤 주전부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찹쌀떡과 메밀묵입니다.
"찹사알 떠억~, 메미일 무욱~" 을 외치며 그 춥던 한겨울밤에 온 동네를 돌아다니던 찹쌀떡 장수의 목소리도 요즘은
들리지 않습니다. 사실 어릴때부터 겨울밤마다 들어온 정겨운 소리건만 정작 한 번도 사 먹어 본 적은 없습니다.
찹쌀떡 메밀묵과 더불어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겨울 간식으로는 군고구마를 빼 놓을 수 없지요.
껍질을 벗기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란 속살 한 입 베어 물면 그 달콤함에 온 몸이 녹아드는 것 같습니다.
체할라 걱정하시며 내 놓으시던 동치미 국물은 이가 시릴 정도여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당시엔 대부분 연탄을 겨울 연료로 사용할 때라 연탄 가스 중독도 상당히 많았는데 연탄 가스에 중독이 되었다 하면
제일 먼저 이 동치미 국물을 마시게 했는데 정신을 빨리 차리라고 그랬던가 봅니다.
군것질 거리가 귀했던 30, 40년 전만 해도 연탄불 위에 구운 고구마와 밤, 쫄깃한 가래떡과 조청만 있어도
긴긴 겨울밤은 행복했습니다.
소복히 눈 내리던 밤, 창호지 바른 문틈 사이로 칼바람이 소리도 없이 비집고 들어오고
메주 익어가는 쾌쾌한 냄새가 나는 방 안에서 머리만 내놓은 채 어깨까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먹던
겨울밤 주전부리들이 먹거리로 넘쳐나는 요즘도 그리운 건 왜일까요?
우와!!
저 군밤, 찐빵, 군고구마, 따끈한 가래떡...
게다가 보기만 해도 시원한 동치미 김치...
저녁 식사를 했는데도
뭐라도 더 먹지 않으면 도저히 못견디겠네요 ㅎㅎㅎ
당장에 우리 동네 사거리 찐빵집에 가서
찐빵, 만두라도 사다가 먹지 않으면 못견디겠습니다.
트윈맘님이 오늘 완전히 살찌게 만드는군요....^^